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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문화

레저큐 인턴기 7편 – 여자 개발자, 남자 디자이너를 위하여

Culture does not make people. People make culture. If it is true that the full humanity of women is not our culture, then we can and must make it our culture.
문화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문화를 만듭니다.

Chimamanda Ngozi Adichie, We Should All Be Feminists

내가 다닌 학부는 남학생 140명, 여학생이 10명의 무려 14:1라는 경이로운 성비를 자랑한다. 머릿 속에 작은 방을 그려놓고 거기에 사람 15명을 들여 보낸다면 그 중 단 한명이 여자라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학부가 위치했던 신공학관은 학교 전체에서 제일 남녀 성비가 낮다는 기계공학과, 전기공학과, 컴퓨터공학과가 모여있는 건물이었다. 산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어서 다른과 학생들이 드나들 일도 없을 뿐더러 모든 학과 수업이 이 건물에서만 열리니, 수업이 끝나고 사방에서 체크무늬 셔츠에 두꺼운 안경을 낀 공돌이들이 쏟아져 나오는 광경은 가히 진풍경이라고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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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하게 교복을 입은 공대생들. 체크무늬 셔츠와 두꺼운 안경은 공대생들의 교복이다.

누군가 그랬다. 세상의 절반은 남자고 다른 절반은 여자라고.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걸까? 고등학교-대학교-병역특례에 이르는 지난 10년 기간 동안 단 한번도 여자가 많은 조직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혹시 내가 뭔가를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에 남자와 여자의 수가 같은 집단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하는걸까?

성비 균형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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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레저큐에 입사 하면서 나는 그런 조직을 실제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여성 직원과 남성 직원의 수가 거의 1대 1인 조직이 실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런 성비가 가능한 것은 레저큐의 직원들이 맡고 있는 역할과 업무가 정말 폭넓기 때문이다. 개발에서부터 디자인, 상품 운영, CS, 마케팅.. 업무의 폭이 넓으니 직원들의 연령, 성별도 다양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1대 1로 균형 잡힌 구성원들의 성비는 남성, 여성 모두에게 어필 할 수 있는 상품들을 판매하는 이커머스 서비스에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남성과 여성은 세상을 인지하고 바라보는 관점, 관심사, 구매 성향이 다르다. 남성 소비자가 서비스에 요구하는 것과 여성 소비자가 서비스에 요구하는 것은 크게 다를 수 있다. 서비스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남성 소비자와 여성 소비자 모두를 잡기 위해서 두 관점, 모두에서 서비스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당연 구성원에 비슷한 수의 남성과 여성을 두는 것이다.

여성과 남성의 관점 차이에서 생기는 토론과 합의는 더 훌륭한 아이디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서로 다른 관점에서 나온 의견이 때로는 충돌하기도 하고, 때로는 보완되기도 하면서 더욱더 멋진 아이디어가 탄생한다.

실리콘 밸리의 기업들이 성별, 인종, 문화, 전문분야 등에서 다양성을 지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제적인 서비스, 전 세계 사람들이 이용하는 제품을 만들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먼저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더불어, 빠르게 변하는 시장에서 끊임 없이 새롭고 멋진 아이디어를 내며 진화할 수 있어야한다. 이를 달성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기업을 구성하는 구성원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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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다양성을 모토로 내걸고 있는 회사 중 하나이다. 다양한 인종, 성별, 전공,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애플에서 일하고 있다.

다양성이 비효율을 수반하는가?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다양성은 응당 비용을 수반한다. 남성 사원들로 조직된 조직을 상상해보자 이들이 여성을 채용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환경, 인프라, 문화를 바꿔야 한다. 이런 비용을 지불하느니 기존에 해왔듯이 남성들로만 기업을 운영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레저큐에서 인턴을 하면서 배우게 된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기업이 성적, 문화적 다양성을 추구하는데 드는 비용보다 그 것을 달성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훨씬 크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다. 다양성의 추구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과도 무관하지 않다. 다양한 인종, 그리고 성별, 특히 소수거나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기업이 일자리를 제공하고 소득을 분배할 수 있다면 그 어떤 국가적 차원의 지원과 캠페인들이 만들어 내는 것보다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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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과 양성평등은 한 커뮤니티, 나아가서 한 사회가 안고있는 골치아픈 문제들을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이미지 출처: TechInsider – Norway solved the gender problem that’s creating a crisis in Japan and Korea)

스웨덴의 저명한 통계학자인 한스 로슬링 카롤린스카는 한국을 괴롭히고 있는 저출산과 고령화의 해결책이 페미니즘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스웨덴은 저출산 문제를 양성평등 확대를 통해서 해결하려는 노력을 펼쳐왔고 이런 문화를 안정적으로 정착시켜 저출산이라는 난제를 멋지게 해결하고 있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들을 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리고 그 것을 해결하는 것이 아주 사소한 변화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라면 이런 문화를 만드는데 투자해야하는 비용은 기꺼이 지불할 만한 것일테다.

옥의 티 찾아내기

우울했던 14대 1 성비의 내 학부시절과 비교했을 때, 레저큐에서의 생활은 분명 훨씬 더 ‘다양’하고 ‘생동감’ 있었다. 이런 점에서 분명 레저큐는 꽤나 모범적인 조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점이 있다. 팀이나 부서별로 떼어놓고 보면 팀을 구성하는 여성, 혹은 남성의 비율이 다소 편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레저큐의 개발팀의 개발자 전원은 남성이며, 레저큐의 디자이너들은 한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성이다.

사실 이런 모습은 우리가 소속되어 있는 한국 사회와 정서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왜 이공계에는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일까. 왜 디자인 학부에는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훨씬 더 많은것일까? 정말 남성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에 강하고 여성이 섬세하고 감성적인 사고에 강하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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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은 여성보다 이성적인 사고에 강하며 여성은 남성보다 감성적인 사고에 강하다?

남성과 여성의 능력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이전에 우리 사회가 성역할의 관념에 매몰되어 그런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지는 않은지, 혹시 그러한 문제로 인해서 우수한 인재들을 놓치고 더 멋진 기회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결국 관념과 편견, 문화 그리고 사회적 시스템은 전부 ‘사람’들이 만들기 나름인 것이니까.

여자 개발자, 남자 디자이너를 위하여

레저큐에서 인턴을 하는 동안, 서로 다른 업무를 맡고 있는, 다양한 배경과 성별을 가진 직원들과 소통하며 이 것이 소비자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에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특히 스타트업은 개개인의 개성, 성별, 배경, 그리고 나아가서 문화와 인종의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어야한다.

아쉽게도 다양성의 측면에 있어서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긍정적인 변화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때로는 이를 추구하고 수많은 담론들을 테이블에 올려놓는 과정에서 수많은 파열음들이 들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설적인 담론들이 테이블 위로 올라오고 있다는 것, 사회 구성원들의 생각도 점점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신호일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여성개발자들과 남성개발자들의 수가 비슷한 개발팀, 그리고 남성디자이너들과 여성디자이너의 수가 비슷한 디자인 팀을 레저큐에서 볼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어쩌면 기대보다 좀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겠지만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이 일하는 회사, 레저큐는 분명 더 멋지고 생동감 있는 기업이 되어 있을 것이다. 🙂

By EastskyKang

레저큐 인턴기 4편 – 님과 함께

레저큐에는 직급과 나이에 상관 없이 직원들 간에 ‘님’ 호칭을 쓰고 항상 높임말을 사용한다.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나이와 직급이 천차만별인 50명 규모의 조직에서 상하에 상관 없이 서로 ‘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생각만큼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님’ 호칭을 쓰는 것은 아주 중요한 규칙이다. 직원들간의 원활한 소통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스타트업에서 호칭은 조직 문화와 직결되는 문제이자, 조직의 근간이 되는 철학과도 밀접하게 엮여져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잡음은 두배로, 메시지는 반으로

우리는 관계의 상하를 따지는 문화에 익숙하다. 자신을 소개할 때 나이를 먼저 이야기 하는 것이 당연하고, 조직이나 단체에서 누군가를 부를 때 직급이나 호칭을 붙여 부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윗 사람은 존경을 받고 아랫 사람은 존중을 받는 이런 문화는 유서 깊고 아름다운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때로 이런 문화가 조직원들간의 소통을 방해하기도 한다. 중요한 정보가 확산되지 않고, 창의적인 의견들이 빠르게 제시되지 않으며 때로는 위화감이 조성되기도 한다. 결국 이러한 문제점들이 조직에 아주 큰 비용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이런 사례들을 많이 보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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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때의 모습을 생각해보자. 어떤 회의 모습이 떠오르는가? 상석에 앉은 사람이 일장연설을 펼치는 동안 직위에 따라 도열한 아랫 사람들이 열심히 고개만 끄덕이는 회의? 아니면 활발하게 서로 토론하고 직급, 나이의 고하에 상관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발언하는 회의?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는 “명령 계층 수를 최소화해서 조직을 가능하면 ‘수평적’으로 만드는 것이 조직구조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모든 명령의 전달 단계마다 잡음은 두 배로 늘어나고, 메시지는 반으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즉, 조직의 계층을 최소화해야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효과적인 소통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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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 그는 노동자들이 지식으로 생산활동을 하는 지식 사회에서는 수평적 조직 문화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철학은 기업들로 전파되었고, 특히 IT 스타트업들을 중심으로 수평적 조직문화를 극단적인 형태로 운영하는 사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장 잘 알려진 사례 중 하나는 Half-Life, Counter-Strike, Portal 의 제작사이자 Steam이라는 게임 배급플랫폼으로 유명한 Valve라는 회사이다. 이 회사는 최소한의 경영진만 남겨두고 조직의 구조와 관리자 직위, 직급 자체를 완전히 없애버렸다. 심지어 팀의 조직도, 직원들이 스스로 하고 싶은 프로젝트에 합류해서 팀을 정할 수 있도록 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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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브 사의 오피스 모습. 이 회사에는 직급도 없고 심지어 정해진 팀도 없다. (이미지 출처: The Wall Street Journal, Who’s the Boss? There Isn’t One.)

이런 문화가 Valve 사에 가져온 효과는 명확하다. 직원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권한, 특히 결정과 판단의 자유가 대폭 확장되고, 직원들이 얼마든지 창의성을 발휘해서 제품을 개발 할 수 있게 되었다. 실수가 있더라도 빠르게 개선되고, 서로의 실수나 실패가 감추어지는 일이 적어졌다. 직원 개개인의 의견과 동기를 존중하는 수평적인 구조의 회사 문화가 탁월한 성과로 이어졌다.

IT 스타트업의 ‘기업문화’에 대해

물 건너 우리나라에서도 IT 기업들을 중심으로 나이와 직급에 상관 없이 호칭을 통일하고, 나아가서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추구하려는 시도들이 일어나고 있다. 네이버에서는 직급 대신에 ‘님’ 호칭을 쓰고 카카오에서는 서로를 영어 이름으로 부른다. 물론 직원들끼리는 직위와 나이에 관계 없이 항상 높임말을 사용한다.

레저큐와 같은 IT 스타트업에서는 수평적 조직 문화가 더욱 더 중요하다. 스타트업에서는 조직원 개개인의 전문성과 생산성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기 때문이다. 팀의 규모가 작을수록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전문성과 능력을 극대화 시키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조직원들이 동등한 위치에서 의사를 피력하고, 자신의 가지고 있는 전문화된 지식을 최대한으로 활용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수평적 조직 문화가 회사의 성과를 보장하는 ‘만능 해결책’은 아니다. 단점 역시 명확하다. 2013년 미디어를 떠들석하게 했던 valve 사의 집단 해고 사건이 이를 보여준다. (이 때 퇴사했던 이들은 valve 사는 아무도 ‘인기 없는 일’을 맡아 하지 않으려고 하고, 오히려 은밀한 내부정치가 횡횡하는, ‘고등학교’와 같은 조직이었다고 주장했다. 3)) 게다가 수평적 조직문화는 형성하기도 유지하기도 어렵다. 누가봐도 수직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소통이 종적으로 일어나는 조직에서 직원들이 서로를 ‘님’이라고 부른다거나 높임말을 사용하는 것이, 진정으로 소통의 장벽을 제거하는 수평적 조직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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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님’이라는 존칭을 쓰는 완전한 수평 조직, 게임 세계. 그러나 ‘님’이라는 호칭이나 수평적 문화를 만들겠다는 것이 중요한게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수평적이고 합리적인 조직은 젊은 구직자들에게 매력적이다. 많은 청년들이 자신의 의사가 존중받고, 자신의 능력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는 조직에서 일하고 싶어한다. 그 동안 연봉과 복지가 회사를 결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면 이제는, 젊은 인재들에게 조직이 얼마나 수평적이고 민주적인지도, 취업 하고 싶은 기업을 정하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가 된 것이다.

내가 인턴을 하면서 경험한 레저큐는 수평적이고 자유로우며 합리적인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회사였다. 생각보다, 이렇게 즐겁게 일할 수 있고, 직원 개개인이 존중받는 다는 느낌을 받게 해주는 조직은 흔치 않다. 물론 이런 기업문화를 계속 유지하고 가꾸어나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고, 회사의 규모가 점점 커질 수록 중대한 도전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조직원들이 함께 그 도전들을 잘 극복해나가고 좋은 문화들을 계속 가꾸어나면서 성장하는 기업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

References

  1. 조영탁, “수평조직을 구축하라!”
  2. 밸브 신입사원 안내서
  3. 노트A – “밸브 수평 관리 구조의 함정”

by Eastsky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