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저큐 인턴기 1편 – 시작하며

시작은 거창하게

This is just the beginning, the beginning of understanding that cyberspace has no limits, no boundaries.
이것은 시작일 뿐입니다. 사이버 세상은 한계도, 경계도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시작 말입니다.

Nicholas Negroponte, co-founder of MIT Media Lab.

할일이 없으면 생각이 많아진다. 오늘이 그랬다. 무던히도 더웠고 마침 아무런 계획 없는 일요일이라 빈둥거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와! 우리는 정말 신기한 시대에 살고 있구나!’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싶지만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떠올려보면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1. 아침. 지구 반대편, 스위스에 있는 선배와 마치 옆에 있는 것처럼 실시간으로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 받는다.
  2. 점심 무렵. 넷플릭스로 영화 한편을 본다. 미국 대통령 암살 사건에 대한 영화인데 이거 완전 내 스타일이다. 어떻게 골랐을까? 그냥 넷플릭스가 이걸 보라고 추천해주고 아이패드에 끊김 없이 영화를 전송(스트리밍)해주기까지 했다.
  3. 무더운 오후. 날씨가 너무 덥다고 생각하며 온라인 쇼핑몰에서 흰색 반팔 티셔츠를 하나 구입한다. 클릭 몇번으로 마음에 드는 티셔츠를 선택하고 결제까지 완료했다. 아마 내일이나 늦어도 모레 쯤 우리 집 앞에 택배로 도착할 것이다.
  4. 저녁 즈음. 음악을 듣다가 곡에 대해서 궁금해져서 구글에 검색을 한다. “구프타프 말러, 교향곡 6번”. 고급 정보가 주르륵 쏟아진다. “말러 교향곡 중에서 고전적 형식미와 혁신적인 요소들을… 불라불라” 수 분 내에 나는 말러의 인생과 그의 교향곡들에 대해 전문가가 된다.
  5. 하루 종일. 언제나 그렇듯, 페이스북을 공연히 들락날락 거리며 친구들의 여름 휴가 사진을 흘깃흘깃 훔쳐본다. 아 부럽구나 나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생각하며.

20~30년 전만 해도 누가 알았겠는가, 이런 세상이 오게 될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전세계 모든 사람이 현실 세계와 인터넷 세계, 두개의 평행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나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만 해도 충분히 터프한 일인데 사람들은 두개의 세상에서 동시에 살아가는 고달픔을 마다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인터넷 세계의 나’가 전지전능하기 때문이다. 수만 km 를 날아 지구 반대편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고 쇼핑몰에 갈 필요 없이 마음에 드는 물건들을 살 수 있다. 심지어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내 어리석은 친구들은 스스로 자기가 뭘하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주기적으로 보고를 해준다. 오늘은 어느 카페에 가서 어느 원산지의 커피를 마셨다느니, EU를 탈퇴한 영국 때문에 주식이 망했다느니, 유로 2016 결승컵은 누구에게 돌아갈지 궁금하다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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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결사회이다. 지구 상의 모든 인류가 인터넷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인터넷 그리고 웹 프로그래머

이게 전부 다 인터넷이란 것 덕분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인터넷은 만들어진게 채 30년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인터넷이라고 부르는 WWW(World Wide Web – 월드와이드웹)은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의 컴퓨터 과학자인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에 의해 1989년에 개발되었다. 처음에는 학자들이 서로 빠르게 학술 정보를 교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런 세계를 고안했다고 한다. 어째 이런 고상한 기술을 친구들이 어떤 디저트를 먹었나 훔쳐보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내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우리는 닐 암스트롱을 달에 보낼 때 사용했던 컴퓨터보다 몇 배 더 좋은 컴퓨터를 쓰고 있고 그 컴퓨터로 앵그리버드를 쏘아 보내며 살고 있는 세대가 아닌가. 원래 세상은 그런것이라고 위안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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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NASA의 과학자들이 닐 암스트롱을 달에 보낼 때 썼던 컴퓨터보다 몇 배는 더 좋은 컴퓨터로 앵그리버드를 날려 보내고 있다.

여하튼 WWW이 탄생하고 나서 얼마후 세상에 웹 프로그래머 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스스로를 해커(Hacker)라고 부르며 인터넷 세상에 무엇인가를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신기한 사람들이다. 채 30년이 지나지 않아서 이들은 WWW 세계에 검색엔진, 온라인 쇼핑몰, 소셜 네트워크라는 어마어마한 것들을 만들어 낸다.

웹 프로그래머들의 능력은 대단하다. 요새는 한명의 웹 프로그래머가 하루 밤 사이에 웹 사이트 하나 만들어 내는 것은 일도 아니다. 더 신기한 것은 이들은 심지어 자기가 만든 것을 인터넷 세상에 공짜로 공개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가져다 쓰시오. 발전 시킬 수 있다면 더 좋음.” 자본주의 논리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왜 이런 짓을 할까? 요약하자면 내가 만든 것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쓰면 더 나은 것으로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어차피 돈은 다른 방법으로 벌 수 있다~~

이젠 이들의 엄청난 능력과 특별한 문화가 ‘일반인’들에게도 별로 낯설지 않다. 요새는 일반인들도 전공과 무관하게 금방 해커가 된다. 오픈소스와 클라우드, 그리고 인터넷 세상에 널려있는 수많은 정보들을 이용하면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다. 해커가 해커를 만들어내고 또 다시 그 해커들이 새로운 해커들을 만들어낸다. 언제까지? 세상 사람들 모두가 해커가 될 때까지.

새옹지마

사실 10년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었던 2008년 쯤, 어느 과에 지원해야 하나 하는 깊은 고민에 빠져 있는 내게 컴퓨터 과목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어디를 가도 다 괜찮아. 그런데 컴퓨터과는 가지마. 여긴 3D야.” 그 때만 해도 컴퓨터 공학의 위상은 이랬다. 이 분야는 소수의 재능있는 친구들의 영역이었고 나와 같은 범인들에게는 위험하고, 지저분하며, 고통스러운 분야였다. 2009년에 나의 모교를 졸업한 150명 정도 되는 학생들이 이공계열 대학으로 진학 했는데 그 중에 컴퓨터 공학과로 진학했던 사람은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지금은 어떨까?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부의 정원이 50명 남짓인데 모든 전공 과목마다 150명이 들어갈 수 있는 대형 강의실들이 꽉꽉 들어찬다. 컴퓨터공학 학생들 50명에 복수전공, 부전공 학생 50명, 그리고 타과생 50명이 같이 수업을 듣기 때문이다. 강의실이 좁아서 수업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교수님들의 투정이 그냥 투정으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심지어 갑자기 개설해야하는 전공과목 숫자가 늘어나서 강의할 교수님이 부족하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미국, 유럽, 중국… 어딜가나 컴퓨터공학(혹은 컴퓨터과학)과가 가장 인기가 많다. 참으로 글로벌하게, 인생사 새옹지마가 아닐 수 없다.

컴퓨터 공학의 위상이 이렇게 변한것은 지난 10년 동안 컴퓨터 기술과 IT 산업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컴퓨터 과학의 발전과 함께 프로그래머란 사람들이 어마어마한 일들을 저질렀고 그들이 세운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같은 회사는 전세계에서 가장 덩치가 큰 회사들이 됐다. 전 세계에 스타트업 열풍이 불고, 프로그래머들의 몸값이 높아지고 있다. 새벽녘 드럼통에 개발자들이 불 피워놓고 기다리고 있으면 봉고차에서 “여기 자바 2명!” 라고 외치는 시대는 확실히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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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산업의 흑역사: 여기 자바 2명 타요!

멀리 돌아서

나는 2013년에 컴퓨터공학 복수전공을 시작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사실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게 된 동기 중에 하나는 인터넷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웹 기술과 소프트웨어 공학이 만들어낸 이 엄청난 변화,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나도 해커들 같이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 그 때는 그 시작이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꿈과 현실은 늘 다르다.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를 한다고 해서 그런 능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후회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나중에 여기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얘기해볼까 한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마지막 학기가 되기까지 그 동기를 충족시킬 만한 변화를 찾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졸업하기전 마지막으로 새로운 도전을 한 번 더 시작하기로 했다. 스타트업에서 웹 프로그래머의 삶을 경험해보자! 웹 프로그래밍에 대해서 배우는데 웹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것 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디있겠는가? 갑자기 새로운 흥분이 느껴졌다. 오 이제야 말로 나도 이제 해커들의 세계로 들어간다! 근데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나는 코딩 실력도 형편 없고 웹 프로그래밍의 웹자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아니 세상에 컴퓨터공학을 전공한다면서 코딩도 능숙하지 않다니 도대체 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친단 말인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근데 원래 그렇다. 컴퓨터 공학을 공부한다는 것이 프로그래밍을 잘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하튼, 방황하고 있던 그 때에 이 미천한 공학도에게 한 회사가 기회의 손을 내밀었다.

다시 본론으로

레저큐는 여행 레저 전문 이커머스(e-commerce) 서비스 가자고를 운영하고 있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IT 스타트업이다. 복잡한 웹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하고 운영하는지 경험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복잡한 오프라인 비지니스 로직을 어떻게 인터넷 세계의 소프트웨어로 구현해낼 수 있을지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새내기 프로그래머에게 최고의 직장이다.

사실 무엇인가를 처음부터 시작해야한 다는 것은 꽤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2016년 1월에 레저큐 가자고 팀에 합류하고 나서, 밑바닥부터 공부를 해야했다. 지루하고 힘들었지만 비로소! 이 과정에서 내가 기대했던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웹이란 것이 대체 무엇인지, 웹 프로그래밍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프로그래머의 삶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성장하는 스타트업은 어떤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

어느새 6개월이 지났다. 기술적으로 성숙하기엔 충분하지 않은 시간이다. 하지만 그 동안 겪었던 일들, 가졌던 생각들을 간단하게 정리해보려고 한다. 새내기일 때의 시각과 감상은 ‘헌내기’의 그것보다는 미숙하고 무딜테지만 나름의 풋풋함과 신선한 시각들을 담고 있을 것이므로.

독자가 아무도 없다고 해도 사실 별 상관 없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인하고, 또 앞으로 나는 엔지니어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차분히 고민해보게 될 것이다. 여느 때와 조금 다르게 글을 쓴다는 것이 가슴 설렌다.

By Eastsky Kang